작성자	나온유	작성일	20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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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Anne, my bosom friend!

공연을 앞두고 잔소리 폭탄을 투하하던 엄마에게 나는 “실망시키지 않을께”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엄마의 잔소리가 좀 줄었다)
하지만 공연이 거의 다가왔을때 밥도 잘 못먹겠고 정말 마음이 힘이 들었다.
난 이미 준비가 끝나있었지만 공연이 다가올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뭐가 있는지 몰랐던 느낌때문이었다.

첫공연이 끝나고 엄마가 놀랐다고 하셨다. 그동안 제일 가까이서 보았던 엄마마저도 날 믿지 않으셨던것 같다.
난 조금 자신있었다. 충분히 연습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연습이 충분한지 알수있냐고?
무대에 오르기전 내 몸이 말해준다
“You are ready”라고...

첫공은 아무런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가 단 한순간이라도 앤이되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나는 한순간도 앤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2번 노래는 너무 흥분되었고 다음 장면을 위해 암전이 되었을때 잠깐 정신을 차리는것 말고는 무대위의 나는 그냥 그 상황에서 이야기하고 리액션을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가 갑자기 화냈다가 슬펐다가 그렇게 감정이 마구 바뀌는건 좀 헷깔렸다. 실제의 나라면 그렇지않을거기 때문이다. 그럴때는 암전이 된 순간 잠깐 무표정해져야한다. 왜냐하면 여운이라는 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빨리 다음 씬 준비를 위해 머리가 막 돌아가야한다.

최고의 장면은 10번노래였다. 너무 재밌었고 정말 술에 취한것 처럼 계속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많이 웃어서 더 신이 났다. 앤의 친구들 모두 신났게 즐겼다. 옛날 평강과 온달때 온달 친구를 하던 때가 생각났나. 작은 역할이었지만 너무 재밌게 했었다. 작은 역할을 할때는 우리가 재밌으면 관객들도 틀림없이 재밌어하는거 같다.

첫공에서 한가지 실수가 있었다.
다른팀 공연들을 보면서 나는 길버트와 마지막 화해하는 장면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길버트와 마지막에 화해하는 장면에서 정말 로맨틱한 장면이길 바래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노래를 “lucky me, I met love~”라고 해버렸다. 깜짝놀랐지만 다행히 뒤돌아 있었고 노래도 아무문제 없이 끝냈다. 하지만 실수는 실수였다. 다행히 디비디 찍는 날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을뿐.

막공은 긴장이 많이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때문인지도 모르고 하고싶은게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대기실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었다. 몰입이 안되어서 속상했다. 하지만 공연은 시작되었고 난 2번 노래를 무사히 잘 끝냈다.
그런데 4번 노래 끝부분에 타이밍을 잘못 맞춰들어가서 노래를 잘못 불렀다(?) 물론 끝에서 in the world 하면서 다시 맞췄지만 너무 속상하고 아쉬웠지만 틔내지 않고 행복하고 신나는 장면이여서 좋아해야 했다. 차라리 슬픈 장면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실제로 울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연 끝나고 친구들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그 때 노래를 틀려서 당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침착하게 잘 했다고, 아무도 몰랐다고 말해줘서 많이 위로 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공연 끝나고 였다. 그 노래가 끝나고 1번문으로 나가서 거기서 나 혼자 너무 속상했는데 다음 장면 린드부인한테 화내는 장면이였어서 그나마 나았다(?) 그리고 사과를 하고 바로 6번을 해 쉬고 속상해 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좀 다행이다. 실수를 했어도 나는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다음 연기는 아무 문제없이 계속 할수 있다. 왜냐하면 그건 연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잊었던 건 아니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난 거의 울었는데 은민이 언니랑 수연이 언니랑 예원이랑 주현이 언니가 날 위로해 주어서 조오오금은 괜찮았다.

첫공 2번 노래때 모자가 떨어졌는데 다행히 매튜오빠가 자연스럽게 집어줬다(고한다) 막공 때는 다행히 모자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2번노래 모자 떨어뜨리지 않기는 앤들의 미션이었던거 같다.) 근데 3번 노래때 침대에 모자를 내려 놓을 때 너무 정가운데에 놓았지만 자연스럽게 잘 놓았다.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8번 노래때 길버트를 제법 잘 때렸던 것 같다ㅋㅋ공연을 하기전에 리허설(?)을 할때 연출 선생님이랑 홍록이 오빠랑 동하 오빠가 때릴깨 뭐 손목 스냅을 해서 어쩌구 내가 살짝 부러뜨리는 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어서 그럴때마다 걱정 되었지만 그런거 치고 꽤 잘 뿌러트렸다. 근데 난 그 나무 손잡이 부분까지 부러지는 줄은 몰라서 내가 아예 뽀갠줄 알고 깜짝 놀랬다. 그리고 너무 웃음이 났다. 원래 엄청 엄청 화내야 되는데 너무 웃겨서 웃음 참느라 혼났다. 그리고 때린 다음에 Anne Shirley, come over here. Kneel! 할때 너무 웃겨서 재빨리 몸을 칠판으로 돌려야 했다.

이제 내일이면 말괄량이길들이기 시작이다. 그래서 오늘안에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공식적으로 내가 앤으로서 보냈던 마지막 날이다.

나한테 앤과 똑같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엄마는 나이가 앤과 같아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난 잘하기 위해서 정말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냥 나이가 같아서라고 말하는게 좀 속상했다.
그래서 시상식에서 후보에만 오르고 상을 받지 못해서 많이 실망했다. 이번엔 꼭 상을 받고 싶었다. 베스트팀후보에 올랐을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우리C팀은 감히 최고의 팀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린 완벽하진 않았지만 웃길땐 더 웃기고 슬플땐 더 슬프고 진지해야할땐 더 진지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난 다음엔 다시 정팀에서 하고 싶다.
왜냐하면 연습도 공연도 더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정팀에서 4번의 공연을 했을때 나는 두번째 공연을 제일 잘한것 같다. 근데 이번에 단 두번의 공연에서는 첫번째 공연을 더 잘했다. 물론 주어진 기회를 모두 제일 잘하는 공연이어야 정팀이 될수 있는 거지만..

나는 앤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미국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Anne of green gables 북클럽에서 일주일에 2번 독서모임을 했다. 거기서 많은 앤들을 만나고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 있었다.
이제는 셰익스피어 북클럽에 들어가야겠다.

시간을 돌려서 앤 대본을 받고 오디션을 하고 역할배정을 받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정말 큰일인것 같았는데 이렇게 엄청 큰 일이 지나가고 나니 그 일이 너무 작은일이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조금 큰것 같기도 하다.
나의 어떤 행동을 본 극단 동생이 “정말 앤다운 행동이야”라고 말했다. 앤다운 건 뭘까 생각을 했다.
앤 다움때문인지 학교에서의 나의 존재감도 0.3%에서 4%쯤 된것 같다. (0.3%의 존재감이란건 우리반애들이 우리반 인원이 24명이 아니라 25명인걸 안다는뜻)

예전에는 선생님들한테 혼나는게 무조건 싫었는데 이제는 그게 당연하다는것을 알게됐다. 가끔은 혼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의 앤을 만들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시상식에서 말할 기회가 있었다면) 엄마는 자꾸 내가 앤을 맡은게 행운이라고 하는데 난 그게 운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열심히했고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신거다. 믿음과 운은 다른것이다.

지금까지 몇달동안 앤이라는 친구와 함께 살았던것 같다. 아직은 헤어져야하는지 모르겠다
다음 대본을 받고 또 새로운 배역을 만나면 좀 멀어질지도 모르지만... 앤이 좀 서운하더라도 슬픈 이별 같은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근데 후기를 이렇게 힘들게 쓰는것을 보니 좀 서운하긴 서운한가보다.
Good-bye! Anne, my bosom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