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임준호	작성일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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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기

안녕하세요. 극단서울 37기 임준호입니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9년간의 극단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극단을 졸업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네요.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면서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무대를 떠나면서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6개월 뒤 다음 작품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보면 저에게 '마지막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극단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동안 공연을 준비하며 제가 성장해온 과정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누나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저도 저 무대에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어머니에게 입단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운이 좋게도 다음 공연에 바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저는 무대 자체에서 매력을 느꼈지, 공연을 위한 연습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극단에서 배우는 안무, 노래, 영어연기가 모두 낯설게 다가왔고, 연습을 게을리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첫 '평강과 온달'은 무사히 마친 공연과 극단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후 몇년간 저는 극단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좋아서 계속 다녔습니다. 연습과정에서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는 즐겁게 다녔습니다.

저의 첫번째 성장은 제 두번째 해외공연 '춘향'에서 방자역할을 맡으며 일어났습니다. 이전 '흥부놀부'로 해외공연에 가본적이 있었기에 이전보다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 지원서를 제출하고, 초반 연습에 임했었습니다. 그러나 연습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제가 맡은 역할이 이전에 맡았던 역할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존에 했던 역할들에 비해 확실히 비중이 컸고, 무엇보다도 제가 무대에서 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었고 무대에 서는 것이 한층 더 편해질 수 있었습니다. 방자를 계기로 저는 좀 더 다양한 폭의 역할에 도전해보게 되었고, 이는 몇년 후 '어린왕자'를 맡는 것에 이르게 됩니다.

정단원팀의 어린왕자를 맡는 것은 저에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부담감을 주었습니다. 연습하면서도 어린왕자가 보기와 달리 표현하기 정말 어려운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왕자를 준비하며 책, 영화, 다른 연극 작품을 찾아보며 최대한 역할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역할을 만들어나가는 진지한 태도와 이를 바탕으로 연습하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저는 제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희열을 느꼈고, 극단에서 연습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 몇년간 해외공연과 정기공연에 참여하며 무대에 서는 것을 즐겼습니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저는 캡틴이라는 자리를 제안받게 됩니다. 내가 캡틴 자리에 있을만큼 충분히 극단에 모범이 되는 사람인가라는 제 자신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극단에서 더욱 모범이 되어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극단 동생들과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자 노력했고, 그들에게 연습 과정에서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제가 무대에서 가장 많은 환호를 받을 수 있게 해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를 맡게 됩니다. 이전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했을 당시에 페트루키오는 제가 동경하던 형들이 맡던 역할이었기에 제가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리허설 전날까지도 문제였던 솔로곡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음이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노래 시작부터 자신감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안되는 부분은 대사로 치되, 역할을 잃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리허설을 진행했는데 리허설 후 다행히도 주변의 반응이 긍정적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이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이 노래 후 관객들의 반응은 지금까지도 제게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후 정글북을 걸쳐 저는 제 졸업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7년전 제가 처음으로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의미있는 작품이었는데, 이를 졸업작품으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품 준비를 시작할때만 하더라도 졸업이 전혀 와닿지도 않았고 아직도 먼 것만 같다고 느꼈습니다. 바쁘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공연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로미오를 연습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기존의 강한 이미지의 역할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저에게 내려진 큰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고자 이전보다도 더 깊이있게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만큼 역할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매일 공연을 하며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이는 성공적인 마지막 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에게도 제 마지막 공연이 잘 마무리되게끔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장난꾸러기로 극단에 들어와 캡틴으로 졸업하기까지 힘들었던 일과 즐겁던 일 모두 있었지만, 제가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계속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은 연습하는 과정과 무대에 서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닌 제 역할로, 혼자가 아닌 팀으로 무대에 서는 것에서 오는 행복은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저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항상 즐거움을 준 단원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년간 극단 없이 주말과 방학을 보내야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여기서 제가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1년 뒤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